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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 아파.
    B망상연재게시판/사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조아라) 2021. 3. 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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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12d8dJJqV3o

    시형이는 언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이권도의 작업실에서 고백 아닌 고백을 받고 거절을 하고 난 이후, 우리 사이의 관계에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보통과 같이 연락을 주고받고, 서로 안부를 묻고, 시간이 나면 밥을 먹는 정도였고..

     

     

    아주..

    아주 가끔.. 수열이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처음에는 질투 난다는 식으로 대화 주제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는 그의 나름대로 나에게 조언을 해줬고 이야기를 들어줬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항상 ' 그래도 질투 나니까, 다른 남자 이야기하지 마요. 이번에는 시형 씨가 힘들어 보여서 도와주고 싶었으니까.. ' 라며, 자신의 기분 상태를 나타냈다. 

     

    나와 그의 관계가 친구 이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 이하의 관계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지만, 서로가 언제 지워질지 모를 희미한 경계선을 두고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과연 이런 아이러니한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가능할 텐데.

     

     

    " 하아.. "

     

    요즘 들어 날씨는 많이 쌀쌀해졌고, 전국에서 눈이 올 정도로 많이 추워졌다.

     

    " 아 학교 진짜 가기 싫다. "

     

    " 고3이 안 간다고 안 가는 신분이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지.. "

     

    " 거기 잡담 그만 하고~ "

     

    학교가 개학을 하고 나서 자율 학습을 빼고 학원으로 오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나마 학교를 벗어나 학원에서 조금이라도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게 좋다나 뭐라나..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곤, 학원밖에 서있는 가로등을 바라보며 손에 잡고 있는 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거세게 내리는 눈 때문에 학습을 계속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결국,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눈이 너무 거세게 내려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학원에서 조금이라도 눈이 잔잔해지기만을 기다렸다.

     

     

    " 많이 내리네.. " 

     

    학원에 사람도 없고 밖에 있는 냉한 공기가 학원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아서 손에 쥐고 있는 머그컵에 더 힘이 들어간다. 

    작은 컵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평소에는 안 하던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 같다.

     

     

     

    언제까지 그와의 관계를 피해야 하는 걸까..

     

    계속 연락하지 않고 그를 피해 다니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던 상황이 돼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수열이를 받아줘야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까? 

    그게 나와 수열이가 행복해지는 방향이 맞는 걸까... 

     

    어느 위치든 시간이 지나면 그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분명 핫초코를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 안이 쓰다.

     

    ' 지잉 - '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 소리에 보나 마나 대설 특보를 알리는 재난 문자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울리는 진동 때문에 결국 휴대폰을 확인했다.

     

    " 여보세요? "

     

    " 민시형 씨 맞으시죠? "

     

    " 네? "

     

    처음 보는 번호에 처음 듣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길래 적잖게 놀랐지만, 본인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전화가 끊겼다.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창 밖을 보니 눈도 어느 정도 멈춘 것 같아서 자리를 정리하고 학원을 나오니, 문 앞에 장우산이 하나 놓여 있었다.

     

    " 선생님들이 놓고 가신 건가..? "

     

    마침 우산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학원 채팅방에 써놓고 빌려야겠다..

     

    ' 학원 앞에 있는 우산 좀 빌리겠습니다. '

     

    ' 엥? 우산이 있었어? 다행이네! 마음껏 빌려! ' 

     

     

    원장 선생님도 몰랐던 우산이 있었던 건가? 

    그럼 학생 꺼 아냐..? 에라 모르겠다.. 

     

     

    팡 -!

     

     

    " 민시형 씨? "

     

    " 네? "

     

    우산을 펼치자마자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는 걸 알고 서둘러서 우산을 접었다. 

     

    가로등도 없이 너무 어두운 하늘 아래, 내 앞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눈을 찌푸린 채로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한 걸음씩 다가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 이권도 나 거의 다 왔어. ' 

     

     

    아, 그때 스쳐 지나갔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왜 이 자리에 있고, 언제부터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건지, 왜 나를 찾아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 제가 맞긴 하는데.. 무슨 일이시죠? "

     

    " 처음 뵙겠습니다. 이창경입니다. " 

     

    " 아.. 그, 안녕하세요. 그래서 무슨.. 일, 윽..! "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가 나를 뒤로 밀치더니, 그대로 내 허리 위로 올라탄 채로 내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꿈적도 하지 않는 이 남자 때문에 입 안으로 눈이 들어오고, 눈 앞이 온통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이권도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네가 알아? 너 같이 꼬셔내기 쉽고 잘 휘둘리는 새끼들은 몇십 명이고 만난 사람이야."

     

     

    " 윽..! 이, 이게 무슨 짓..! "

     

    " 네가 좋아서 만나는 게 아니라 재미있어서 만나주는 거라고, 근데 요즘 들어서 이권도가 너 때문에 곤란하고 귀찮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

     

    나와 만나는 게 곤란하고.. 귀찮다고?

     

    그에게 만나 달라고 조른 적도 없었고, 그를 곤란하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내가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하지만, 그건 이권도가 나에게 직접 말해야 할 부분이지 이 사람에게서 전해 들어야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당, 신이.. 무슨 컥, 자, 격으로 윽. "

     

    " 네가 그렇게 좋아 죽는 이권도랑 붙어먹는 사람? "

     

    마치 이권도의 애인이라도 되는 마냥 나를 비웃으며 손에 더욱 힘을 준다.

     

    그럼 이권도는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나에게 다가온건가? 

    하지만 만나는 사람은 없다고 그랬는데..

     

    작가님이 나에게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다.

     

    " 거, 거짓.. 윽! "

     

    " 너 동생도 있다면서? 걔랑은 못 붙어먹으니까 이권도한테 붙어먹으려고? "

     

     

    뭐?

     

    지금 이 사람 입에서 수열이 이야기가 나온 건가?

    이 사람이 수열이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설마, 이권도가 그에게 말이라도 했을까?

    그래서 나의 존재까지도 알고 있던 걸까..? 

     

     

    " 어쩌냐? 네가 잡은 게 썩은 동아줄인데? "

     

    " 그럴 리, 가 헉.. " 

     

    점점 희미해지는 시선 끝에서 입가에 맴도는 이름을 외치고 싶었지만, 외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저 살려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고, 입 밖으로 목소리조차 나올 수 없을 만큼 힘이 빠져가고 있을 때, 나를 조여왔던 목이 갑자기 편안해지고, 상황을 확인하지도 못 한채 곧이어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 홀로 길을 걸어가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서 속도를 내며 걸어가고 있는 도중에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사과를 하기 위해서 고개를 들고 보니, 가장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볼 수 없었던 사람이 서 있었다

     

     

    " 형. "

     

    " 수, 수열아.. "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이자 내겐 가장 그리운 사람.

    평생을 함께 하고 싶지만, 그것조차 서로에게 욕심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사람.

     

    " 수열아.. 날씨가 추워. 따뜻하게 입고, 밥도 잘 먹고 있지? "

     

    그에게 손을 뻗어 보지만, 닿지 않는다.

     

    그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만 같고, 나와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 수열아, 이리 와... 응? "

     

    " 형이.. "

     

    두 손을 꽉 쥔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열이가 지독하게 외로워 보인다.

    홀로 서 있는 그의 곁으로 점점 소복하게 눈이 쌓인다.

     

    춥잖아 수열아.

     

    이리 와, 제발.

     

    " 응? 수열아, 제발.. 많이 추워.. 이리 와! "

     

    " 형이 날 외롭게 하잖아.. 날 쓸쓸하게 하잖아. "

     

    " 수열아..! "

     

     

    손을 뻗어 그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다가갈 수 없었다.

     

    휘몰아치는 눈바람에 의해 눈도 보이지 않고 아예 끄떡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서 멀어지지 마, 내가 미안해.

     

     

     

    하지만, 하지만...! 

     

     

     

     

     

    " 으, 흑.. 으.. 하. " 

     

    " 주변에 있는 블랙박스가 다 고장 나서 찾을 수 없다뇨? 정말입니까? "

     

    " 아오!! 도대체 누가 이렇게 해놓은 거냐고!! "

     

     

    눈 앞에 있던 수열이와 검은 배경은 사라지고, 눈을 뜨고 마주한 환경은 낯선 곳이었다.

     

    하지만, 이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있었다. 

     

    병원이구나. 

     

     

    그리고 내 옆에 서 있는 이 사람은..

     

     

    " 수, 수열.. 이? "

     

    " 형! 괜찮아요? "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더니 등을 돌리던 사람은 바로 성백이었다. 

     

    오랜만에 보는데..

    되게 안 좋은 모습으로 마주 하게 되니깐 미안해지네.. 

     

    " 네가.. 도와, 준거야..? "

     

    " 형, 말하지 마요. 소리를 많이 지르기도 했고.. 목에 무리가 많이 가서 성대결절 걸렸대요. "

     

    " 아, 큼... 아.. 그랬구나.. " 

     

     

    어쩐지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목이 많이 불편하다고 느꼈는데 성대결절이 왔었구나..

    불편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목으로 손이 갔고, 곧이어 목덜미가 시큰한 게 느껴졌다.

     

     

    " 야 민시형.. 너 지금 목 엉망이니까 만지지 마. "

     

    " 어..! 윤, 지.. 켁 "

     

    " 너.. 무슨 일 있었어? "

     

    " 누나.. 말 걸면 안 된다니까요.. "

     

    " 아오 그니까!! 널 이렇게 만든 새끼가 도대체 누구냐고!! "

     

     

    성백이 뿐만 아니라 윤지와도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그녀는 마지막으로 만났던 모습과는 다르게 많이 수척한 상태였다.

    원래도 키가 커서 어디 하나 부족한 곳 없이 건강해 보였던 그녀가 눈에 띌 정도로 살이 빠졌고, 언제부터 잠을 못 잔 건지 눈가가 어둑어둑했다. 

     

    " 잘.. 모르겠어.. 나도 기억이 안, 나서.. "

     

    이권도의 지인이라고 말을 한다면, 윤지가 당장이라도 이권도에게 찾아가서 그를 곤란하게 만들 것 같았기에 말하지 못했다.

     

    이권도가 내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정말로 날 귀찮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웠고... 

    그러면서도 내가 그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화를 입었나 울컥하기도 했다. 

     

    그 사람이 정말 대단한 사람인 거 알고 있고, 나와는 달리 특별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넘보지도 그 사람과 같은 곳에서 서 있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이 사람에게 단 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랬던 것뿐인데..

    이게 목숨까지 걸만한 일이 될 정도로.. 큰 욕심인가? 

     

    " 켈록.. 큭, 으.. "

     

    " 그렇게 추운 날 눈 속에서 기절해 있었으니까 당연히 감기가 걸릴 수밖에 없죠.. "

     

    " 어떻게, 알고 데리고 온, 켈록.. 거야? "

     

    " 윤지 누나가 안 그래도 요즘 형한테 연락이 없다고 직접 집까지 갔는데 없다고 저한테 연락했거든요. " 

     

    요즘 윤지한테 연락을 못 했던 것은 사실이다..

    윤지한테 하지 못 한 말들도 많고 그 안에 일어난 일들도 많았으니까..

    게다가 수열이와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거의 학원 일에 집중을 하느라 외부와의 연락은 거의 차단했다시피 지냈다.

     

    그래도.. 작가님이랑은 종종 연락을 했네.. 

     

    " 그래서 아르바이트하는 곳 알려줬고.. 윤지 누나가 그 앞까지 왔다가 쓰러진 형 보고 구급차 부르고 저한테 연락했어요. "

     

    " 그, 랬구나.. 미, 윽.. 미안.. "

     

    성백이에게 어떻게든 힘을 쥐어 짜내서 웃어 보이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윤지에게도 사과를 하기 위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움직임에 따라서 주사 바늘 또한 손등을 헤집는 것 같아서 익숙하지 않은 아픔에 눈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천천히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 흑, 으윽.. 하아.. "

     

    " 윤, 윤지야.. 울어? "

     

    " 너.. 씨발 진짜 나쁜 새끼야.. "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그녀 때문에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윤지와 오랜 시간을 함께 알고 지냈지만, 그녀가 이렇게 입을 꽉 다문채 울음을 삼키려는 모습은 처음 봤다.

    다독여주고 싶었지만,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싶어서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미.. 미안해.. 정말 미안해. "

     

    " 형, 윤지 누나가 엄청 걱정했어요. "

     

    " 정, 말.. 정말.. 윽.. 흐.. 미안해 윤지야. "

     

    그녀가 우는 걸 보니 나 또한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내가 그녀 앞에서 울 자격이 어디 있다고 눈물을 흘릴까 싶어, 눈에 힘을 주고 울음이 터져 나오지 않게 입을 꽉 다물어 보지만 자꾸만 입술 사이로 흐느낌이 나온다. 

     

    " 잘 지낸다면 잘 지낸다고 연락을 하던가!! 못 지내면 못 지내는 대로 그냥 연락하면 되는 걸!! 왜!! 왜!! "

     

    " 누나, 병원이니까 진정해요.. "

     

    " 너 진짜 나쁜 새끼야. 씨발 너 진짜 너무해. 씨발.. 진짜 네가, 죽, 는.. 줄 알고 내가 얼마나..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멱살을 잡았던 그녀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나를 품 안에 안은 채로 나와 같이 흐느낀다.

     

    하염없이 병원 안에서 펑펑 울고 있으니 간호사가 우리에게 다가와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주의를 줬고, 그 이후로 고개를 들지 못 한 채로 둘이서 훌쩍이기만 했다.

    성백이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푹 쉬더니 두루마리 휴지를 통째로 빌려왔고, 각자 눈물, 콧물을 닦기 바빴다. 

     

    " 씨발.. 너 진짜 친, 흑, 구도 아냐. "

     

    " 미, 끅.. 아내.. "

     

    " 둘이 그만 싸우고 화해해요.. 서로 안고 난리 쳤으면 그만 싸워야죠. "

     

    " 안, 끄윽.. 싸웠어. "

     

    " 에휴.. 네네.. "

     

    겨우 울음을 그치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양 눈을 벅벅 닦고 있는데, 내가 정신을 차렸으니 일반 병실로 옮기겠다는 간호사의 말에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 왜, 왜 제가 병실로 켁.. 가요? '

     

    ' 몸이 많이 안 줗으셔서요. '

     

    ' 형, 못해도 3일 정도는 쉬어야 한다고 했어요. '

     

    ' 그래, 차라리 병원에 묶어놓으면 불안하진 않겠지. '

     

    어리둥절한 채로 간호사가 안내하는 길로 천천히 따라갔고, 걸음을 따라 멈춰 선 곳은 1인 병실이었다.

     

    겨우 3일밖에 병원에 있질 않는데..

    굳이 1인실까지 사용할 필요가 있냐는 식으로 투덜거리자 윤지가 주먹을 꽉 쥐곤 나를 병실 안으로 구겨 넣는다. 

     

    " 영양실조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서 곧 쓰러질 운명이셨단다. 그냥 조용히 하고 좀 쉬어. "

     

    " 아.. " 

     

    " 뭘 아라는 거야.. 저 바보가.. "

     

    " 우선 많이 늦었으니까 누나도 돌아가요. 오늘은 제가 곁에 있을게요. "

     

    " 아, 아냐! 읏.. 성백이도 집으로 가도 돼. "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배웅하려고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그대로 침대 위에 털썩 앉고 말았다.

    내 모습을 보고 혀를 차는 윤지와 그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성백이가 보인다.

     

    " 일, 일부로 이렇게 산 건.. 아니고.. "

     

    " 다 괜찮아지면 꼭 말해줘야 해. 더 이상 못 기다려. "

     

    " 으응.. "

     

    풀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윤지가 머리를 벅벅 긁더니 성백이의 등을 주먹으로 치곤 내일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빠져나간다.

     

    병실은 어떻게 구했으며.. 병원비는 누가 청구했고.. 앞으로 학원에는 어떻게 말해야 하지 여러 가지고 복잡한 마음에 고개만 떨구고 있으니, 성백이가 천천히 다가와 내 코 앞에 환자복을 들 이내 민다.

     

    입, 입으라고..?

     

    " 환자잖아요. 그리고 불편한 옷 입고 있을 바에 갈아입는 게 좋죠. "

     

    " 혹시.. 병원비 같은 건.. 누가 해결한 거야? "

     

    ".. 하아, 최수열이요. " 

     

    " 아.. 그렇구, 뭐?! 켁.. 윽! "

     

    너무 놀란 마음에 소리를 지르자마자 목이 조여 오는 느낌에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윤지도 성백이도 아닌, 수열이가 내 병원 일처리를 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최근에 있었던 일 때문에 연락을 하지도 않았고, 늘 피하기 바빴는데..

    내 상황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 수열이한테 연락한 거야..? "

     

    " 그 반대였어요. 최수열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

     

     

    눈도 많이 오고 형 걱정되니깐 우산 들고 학원까지 찾아갔는데, 학원 불이 다 꺼져 있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대요.

     

    분명 퇴근 시간이 아닌데 불이 꺼져있어서, 혹시 주변에 형이 있을까 봐 우산 두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다시 돌아왔을 때 학원가 밑에서 누가 눈 밭에서 구르고 있었대요.

     

    누군지 관심도 없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달려가서 보니까 형이었다고..

     

    형 목 조르고 있던 사람은 최수열이 잡고 있다가 형이 정신 잃은 거 보고 무작정 저한테 전화하고.. 

     

    그 주변에 있던 윤지 누나한테 급하게 전화해서 같이 갔는데, 범인은 이미 도망간 상태고..

    블랙박스 또한 찾을 수가 없었어요. 

     

    형이 정신 차리기 전에 최수열도 곁에 있다가 경찰서로 갔고요. 

     

     

    " 그럼.. 지금 수열이는 어디 있어? "

     

    " 글쎄요.. 한참 형이랑 누나가 껴안고 울고 있었을 때 연락 왔었는데, 범인의 행방을 찾기가 어려운가 봐요. "

     

    " 그래서 지금, 어디 있.. 윽. "

     

    " .. 수열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

     

    성백이가 나에게 물었지만, 속에서 끌어 오르는 눈물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모두를 위해서 지내오고, 모두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살아온 삶들은 오직 내 기준에서 그들을 위한 노력을 한 거지 그들에게 필요로 하지 않았던 노력들을 한 것이다.

     

    내가 필요로 느꼈던 일들이 그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었고, 내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필요한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만 미안해져 울음이 터져 나온다.

     

     

    " 형.. "

     

    " 다음에.. 윤지랑 있을 때 말할게.. 나도 아직 큭, 아.. 오늘은 좀 무리인 것 같아서.. "

     

    " 알겠어요. 옷 갈아입으시고, 오늘은 곁에 있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 너도 늦은 시간 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서 집으로 가서 쉬어. "

     

    " 알았어요. 푹 쉬세요. 아, 먹고 싶은 건 없어요? "

     

    " 그냥 윤지랑 네가 먹고 싶은 거 사와. 그리고.. 고맙고 미안해. "

     

    " 알면 됐어요, 내일 봬요. "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내가 함께 있는 걸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성백이는 더 재촉하지 않고 인사를 하고 병실 밖으로 나간다. 

     

    눈치가 빠르기도 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실례를 범하지 않는 성백이가 부럽다.

     

    조금이라도 욕심을 버리고, 남의 눈치를 조금만 덜 봤더라면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 하아.. "

     

    한숨을 내뱉는 것 마저도 편하지 않는 이 밤에.. 매일 홀로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고독하게만 느껴진다.

     

     

    ' 톡, 톡.. 톡 '

     

    ' 작가님, 혹시 바쁘신가요? '

     

    늦은 시간에 연락을 했지만 그가 받아주기만을 바랬다.

     

    직접 듣고 싶었다. 

     

     

    당신이 정말로 나를 귀찮아하는 것인지, 그래서 직접 말하기 곤란해서 주변 사람들을 이용해서 불편함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왜 이런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나에게 해를 가하려고 하는 건지..

     

    우리가 친구로 지내는 것은 정말 무리인 것인지 등등..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내가 병원에 있는 시간 동안 이권도에게 연락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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