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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일상 속에서 잊지 못 할 너.
    B망상연재게시판/사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조아라) 2021. 2. 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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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rok2YK_D6Oc

    시형아.. 미안하다 우엥..  

    수열이와 밖에서 눈을 맞은 뒤로 감기가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기침을 입에 달고 살았고,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할 때도 기침 소리 때문에 통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시간을 내서 병원에 다녀왔고 약을 처방 받은 뒤, 이권도가 챙겨준 꽃차까지 챙겨 먹으니 감기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종종 수열이의 공부를 가르쳐 주기로 했지만, 몇번 만나지 못하고 수열이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도서관은 혼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수열이를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게 시작했던 스터디가 최근에는 수열이와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심장이 덜컥해서 내가 집중을 못했는데..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 민시형! 목소리 들었을 때는 다 죽어가더니, 이젠 좀 괜찮아졌나 보다? "

     

    " 감기가 좀 오래가더라고.. 너는 건강하게 지냈어? "

     

    학원 일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밤늦게까지 보충 학습을 하느라 윤지와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 조차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윤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 나도 매번 똑같이 지냈지~ 야 들어가자! 오늘 내가 재미있는 놈 한명 소개해줄게. "

     

    " 어, 어엉..? "

     

     

    갑자기 소개를 시켜준다고?

     

    윤지가 소개를 시켜준다고 자리를 마련해주면 항상 곤란했던 적이 많았다.

    내가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하니까 결국, 그녀의 눈에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적당한 사람을 종종 소개해줬는데.. 

    자리를 마련해주는 건 고맙지만,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어색해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소개를 받은 상대방이 사과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에이.. 설마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말도 없이 선 자리를 마련한 건 아니겠지..? 

     

     

    약간의 불안감과 불신을 가지고 윤지와 함께 자주 갔던 부대찌개 집 안으로 들어가자, 빼곡하게 차있는 테이블 사이에 혼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인다. 

    무표정하게 찌개가 끓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인사를 한다.

    남자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자, 우리 둘의 모습을 보고 윤지가 배를 잡고 웃어버린다.

     

     

    " 아핰, 끅, 흨큭.. 야 뭐해 둘이? "

     

    " 아, 아니.. 저기에서 인사를 하니까.. "

     

     

    자리에 앉아있으면서까지 웃음을 참지 못 했던 그녀는 한참을 웃고 난 뒤에야 내 앞에 있는 남자를 소개해줬다.

    이름은 김성백. 나이는 23살에 우리보다 2살 어리고, 윤지와 같은 학과를 다니는 미술 전공생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23살이면 수열이랑도 동갑이구나.. 

     

    " 아, 그.. 안녕하세요. "

     

    " 말씀 편하게 하세요. "

     

    살면서 이렇게까지 낮은 목소리는 또 처음 들어본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한 성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림을 그린다는 말에 적잖게 놀랐지만, 물수건을 건네주는 모습이나 수저 젓가락을 놓아주는 섬세한 모습을 보고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라, 그럼 성백이도 이권도에 대해서 알고 있나..? 

     

    " 그럼, 어.. 그래! 나는 민시형이야. 윤지랑 알고 지낸지는 꽤 됐어. "

     

    " 김성백입니다. 윤지 누나한테는 시형 선배 이야기 자주 들었어요. "

     

    " 내 이야기..? 윤지가 뭐라고 했는데..? "

     

    " 주변에 제대로 만나는 사람도 없고, 눈도 낮아서 문제인 사람이 있다고 하셨는데.. "

     

    " 아, 아니!! 야! "

     

    " 야! 윽흨,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김성백 이 자식이! "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성백이의 목을 조르는 윤지를 말리려고 했지만, 익숙하다는 듯이 당하고 있는 성백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느 정도 장난이 끝나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 지냈냐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묵묵하게 부대찌개를 나르고 있는 성백이 눈에 들어왔다.

     

    소개해주려고 데리고 온게 아닌가..? 

     

    " 아? 김성백 신경 쓰지 마~ 내가 밥 사주려고 데리고 나온 거야. 그리고 원래 말 없어. "

     

    나랑 오랜만에 만났으면 둘이서 만나야지 아무리 그렇다고 후배를 저렇게 데리고 와버리면 어떡해 윤지야..

    말이 없다고 해도 속으로 선배 둘이 앉아 있는데 불편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잖아..

     

    " 저기, 성백아..? "

     

    " 네? "

     

    " 성백이는 어.. 주로 뭘 그려? "

     

    너무 뜬금없었지만, 그래도 이왕 이 자리에 온 거 말이라도 걸어봐야지 싶어서 먼저 입을 열었는데..

    정작 질문을 들은 사람은 멍하니 나만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젓가락을 내려두더니 핸드폰을 꺼낸다.

     

    그리고.. 

     

    " 저는 전공 말고 다른 분야가 재미있어요. 여기 제가 그린 거 보실래요? "

     

    " 어? 진짜? 봐도 돼? "

     

    " 당연하죠. "

     

    흔쾌히 허락을 하고는 내 손에 핸드폰을 건네주더니 나의 감상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살펴보는 날 쳐다본다. 

    차근차근 그림을 살펴보는데 윤지가 그리는 그림과는 다르게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들이 핸드폰 안에 담겨 있었다.

     

    어, 이 캐릭터는 예전에 고3 때 내가 했던 게임 캐릭터의 주인공이네?

    미술관에서 뜻과 의미를 알기 어려운 그림과는 달리 친숙한 그림들이 있으니 눈이 즐거웠다. 

     

    " 나 이 캐릭터 알아. 마법사 캐릭터 아냐? "

     

    " 맞아요. 그 게임해본 적 있으세요? "

     

    " 당연하지. 나 입시 전까지는 매일 게임만 했는 걸! "

     

    " 다른 캐릭터들도 아는 거 있으세요? "

     

    " 이거랑, 이거랑.. 이 여자 캐릭터는 궁수인데 엘프라서 좋아했어. "

     

    " 저도 그 캐릭터 좋아했어요. "

     

    아까 봤던 과묵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분야에 대해서 눈을 빛내고 말을 하는 성백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종종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가고 싶은 길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때마다 많이 힘들어하는데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물어보면 그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처럼 설명을 하며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름답게 보였다. 

     

    내 앞에 있는 성백이 또한 그랬다.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더욱 확고하게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이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 길에 자부심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고 들었던 것 같다.

     

    " 야아.. 나도 좀 껴줘.. 왜 너네가 나보다 더 친한 건데? "

     

    " 소개해 주려고 데리고 나온 거 아냐? "

     

    " 뭐, 그건.. 맞지. "

     

    " 친해지면 더 좋은 거지, 그렇지? "

     

    " 그렇죠. "

     

    " 얼씨구.. 아주 북 치고 장구치고 앉아있네.. "

     

    너무 성백이랑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윤지와도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근황을 물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수열이와 있었던 일 그리고 이권도에게 선물을 받았던 것 등의 이야기밖에 없어서 말하기가 곤란했다. 

     

    분명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윤지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잡을 것 같은데, 차라리 성백이가 있어서 막아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백이는 내가 게이라는 걸 모를 텐데.. 

     

    " 아니, 그래서 뭐 하고 지냈냐고요 민 시 형 씨! "

     

    " 아, 그냥.. 그냥 아르바이트하면서 지냈지! "

     

    " 만나는 사람은? "

     

    " 내가 만나는 사람이 어딨어. "

     

    내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미심쩍은 눈으로 윤지가 나를 바라보다가 가만히 앉아서 부대찌개에 햄을 골라 먹고 있는 성백이를 쳐다본다. 

     

    " 야, 너는 만나는 사람 없냐? "

     

    " 별로 만날 생각은 없는데요.. "

     

    " 얜 어때? "

     

    " 시형이 형이요? "

     

    " 뭐? "

     

    먹고 있던 젓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는 윤지의 행동과 입에서 갑작스럽게 나온 말에 당황했던 것은 나뿐이었다. 

    곧이어,  나를 쳐다보던 성백이 다시 햄을 먹더니 ' 딱히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요. '라는 폭탄 발언을 뒤로 아무렇지 않게 다시 밥을 먹는다.

     

    윤지랑 친하다는 것은 성백이도 이쪽 사람이라는 뜻인가? 

    오늘 소개해준다는 게 정말로 그런 쪽으로 소개를 시켜준다는 의미였어?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성백이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물을 수 없었기에 혼란스러운 눈으로 윤지를 바라보자 또 웃는다. 

     

    거봐, 또 장난이지... 

     

     

    " 성백이를 소개해주려고 했던 건 맞아. 근데 둘이 뭐 연인으로 만나라고 그러는 게 아니라~ " 

     

    " 하긴 네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누군가를 소개해주는 그런 매너 없는 사람은 아니지..? "

     

    " 이게 은근슬쩍 돌려 까고 있네.. 성백이가 성격도 좋고 착해서 새로운 친구라도 만들어 주려고 했다. "

     

    졸업하고 나서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람은 윤지랑 대학교에서 잠시 활동했던 동아리 인원들 말고는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람들을 제외하고 수열이나 이권도랑도 연락을 주고받지만, 그래도 친구보다는.. 

     

    " 그래서 이제는 말해줄 수 있어? "

     

    " 응? 상관은 없지만, 성백이가.. "

     

    밥 먹으러 왔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면 지루해질 것 같아서 성백이를 먼저 보내려고 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니 내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는 그의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다.

     

    오늘 하루 만났지만 내가 이야기를 꺼낼 때도 내 눈을 쳐다보는 것보단, 내가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시선을 밑으로 두고 경청하는 것 같았다. 

     

    " 음.. 저번 주 주말에 수열이랑 같이 있었는데 좀 놀랄만한 일이 있었거든, 아! 수열이는 성백이랑 동갑이야. 내가 아끼는 동생이고 " 

     

    " 뭐, 둘이 눈이라도 맞았냐? "

     

    " 밖에 오래 있었는데 내가 감기가 걸려서.. 그래서 수열이가 약도 사주고 간호도 해줬는데.. "

     

    " 아니 왜 이리 뜸을 들여! "

     

    " 입을 맞춰서.. "

     

    " 뭐!? "

     

    윤지가 부대찌개를 떠먹고 있던 숟가락을 들고 벌떡 일어나니, 성백이 재빠르게 그녀의 어깨를 잡고 눌러 앉혔다.  

     

    변명 아닌 변명으로 입을 맞췄던 게 서로 감기를 나누면 감기가 빨리 낫는다는 이야기를 하자, 윤지가 ' 허, 지랄.. '이라는 소리를 내고, 내 쪽에는 수열이가 절대로 별 다른 뜻에 그런 게 아닐 거라는 말을 하느라 땀을 뺐다. 

     

    " 그리고 그 이후에 작가님을 만났는데.. "

     

    " 이권도!? "

     

    " 어? 으응.. 그 작가님이 작업실로 초대한다고 하셨는데 그 약속이 취소가 돼서.. "

     

    " 살다 살다 이권도 작업실을 들어가는 게 우리 과도 아니고 네가 될 줄은 몰랐다. " 

     

    " 감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학원까지 직접 찾아오셔서 꽃차 주셨어. " 

     

    " 꼬옷차아~? "

     

    " 꽃차요? "

     

    " 꽃차는 무슨 꼬ㅊ... 읍! " 

     

    윤지가 무슨 말을 할지 알았기에,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눈 앞에 있는 계란말이를 그녀의 입에 집어넣어버렸다. 

    입에 들어간 계란말이를 난폭하게 씹어 먹던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오늘 술 먹을 생각을 하고 나온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술이 못 받을 것 같은데.. 여기서 거절하면 서운해하겠지..?

    주문시킨 소주가 도착하고 자연스럽게 잔을 건네자 윤지가 술병을 치운다.

     

    " 넌 오늘 마시지 마. " 

     

    " 으응..? "

     

    " 술도 못 하는 얘가 어떻게 가려고 그래. "

     

    " 아.. "

     

    " 그리고 너 취해서 너 데리러 오는 놈들 보기도 싫으니까.. "

     

    내가 취하면 누가 데리러 오기는 하나.. 

    이권도도 최수열도 내가 술을 마시고 있는지 모를 텐데. 

    그렇다고 술주정으로 다른 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는 사람도 아닌데.. 

     

    " 그래도 혼자 마시기 좀 그러잖아.. "

     

    " 이러려고 김성백을 데리고 온 거지 암 고럼! "

     

    " 감사합니다 누나. " 

     

    둘이서 술잔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이번엔 내 앞에 있는 음료수 잔에 사이다가 가득 담긴다. 윤지가 건배를 하자는 제스처를 취하고 각자가 술잔을 들고 건배를 하고 먹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윤지를 데리러 온 여자친구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윤지를 겨우 부축해서 차 안으로 들여보내주자, 갑자기 손가락 질을 하며, ' 네가 남자를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서 어떡하냐! ', ' 내 불쌍한 친구 어떡하냐.. ' 등의 걱정을 하기에 또 힘 없이 웃으며 그녀를 보내줬다. 

     

    " 성백이 너는 집이 어디야? "

     

    " 저는 가는 길에 PC방 좀 가려고 했는데, 형은요? "

     

    " 나는 반대편에서 버스 타고 가면 돼! "

     

    " 그럼 제가 기다려 드릴게요. "

     

    " 에이~ 가로등 다 켜있고 나 혼자서 갈 수 있어~ "

     

    " 형이랑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

     

    최수열이나 이권도처럼 뭔가 다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말이 아니라, 정말 나와 있었던 시간이 즐거워서 더 함께 있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나와 있었던 시간이 즐거웠다는 말을 해줘서 나도 고마웠기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성백이가 그리는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말을 하고,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가슴 안쪽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 같다.

    순수한 열정 하나만으로 꿈을 현실화시키는 이권도나, 자신의 꿈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성백이나 정말 대단한 사람들 같으면서도, 그들의 꿈을 들어주고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내가 될 수 있어서 정말 고마운 마음뿐이다. 

     

    " 형, 다음에도 같이 밥 먹어요. "

     

    " 그래~ 배고프거나,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연락해! "

     

    "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

     

    마지막까지 묵묵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수열이와 동갑이면서도 더 어른스럽게 보이는 것 같아서 신기하고 대견할 정도다. 

     

    그러고 보니 수열이랑 연락을 한지도 좀 지났는데, 오랜만에 목소리라도 조금 들어볼까.. 

     

    ' 뚜르르 - 뚜르르 - '

     

    몇 번의 신호음이 가기를 반복하다,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 여보세요.. "

     

    " 수열아, 잘 지내? "

     

    " 응.. 형은? "

     

    " 형도 잘 지냈지, 목소리가 좀 안 좋네? 어디 아파? "

     

    " 그냥.. 형 어디야? "

     

    " 오늘 대학 동기 만나고 이제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이야. "

     

    " 대학 동기가 남자야? "

     

    " 응? 여자인데? "

     

    상대방에게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자 혹시나 통화가 끊겼나 싶어서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수열이와 연결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수열아? 하고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이 들리지 않아서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버스 노선을 확인했다.

     

    여기서 수열이네 집으로 가는 방향이 어디지.. 

     

    " 형.. "

     

    " 응? "

     

    " 왜 전화했어? "

     

    " 오랜만에 수열이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

     

    무슨 일이 있던 건지 핸드폰 반대편에서 들리는 수열이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다.

    평소에 전화를 하면 항상 해맑은 목소리로 나를 반겼는데, 오늘은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으니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수열아, 아프면 형이 갈까? "

     

    " 아냐. 그냥 피곤해서 그래. "

     

    " 밥은 먹었어? "

     

    " 대충 먹었어. "

     

    " 잘 챙겨 먹어야지.. "

     

    " 나중에 알아서 먹을게, 형 조심히 들어가. "

     

    뚝 -

     

    먼저 통화를 끊는 법이 없던 수열이가 무슨 일인지 통화를 먼저 끊었다.

     

    사실, 통화를 먼저 끊든 안 끊든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수열이 목소리가 많이 안 좋고 밥도 대충 먹었다는 말을 듣고, 버스에서 내려 근처에 있는 빵집에 가서 급하게 샌드위치를 사고 수열이네로 향했다.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밥을 거르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많이 힘들었으면 연락이라도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속이 상한다. 

     

     

     

    ' 뚜르르 - 뚜르르 - ' 

     

    수열이네 집 앞에 도착해서 전화를 걸어보지만, 전화를 받지 않아서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가 문 앞에 빵을 놓은 채로 문자를 보내는 도중 골목에서 목소리가 들려,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눈이 갔다.

     

    키가 큰 남자와 그보다 더 작은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 뚜르르 - 뚜르르 - '

     

    계속 신호음이 가고 있었지만, 당사자는 전화가 온지도 모른 채 앞에 있는 남자만을 바라보고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수열이가 알아차리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걸고 있는 전화가 그들을 방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통화를 종료했다. 

     

    피곤했다면 집에 들어가서 쉬면 될 텐데 혹시 쉬지 못했던 걸까?

    밥을 잘 못 챙겨 먹었다는 말은 사실일까..? 

     

    단지, 저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어서 곤란해서 빨리 통화를 종료하려고 했던 걸까.. 

     

    수열이가 누굴 만나든 나와는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방해꾼이 된 기분이라 조금 서운하면서도 

    저번 주까지 입술을 닿고 있던 사람이 수열이라는 사실에 감정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샌드위치가 한가득 담아져 있는 봉투를 손에 쥐고 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서둘러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그제야 숨이 찼다는 것을 느끼고 갇혀 있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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