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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 마음을 모르겠는데, 당신 마음은 더 모르겠어요.B망상연재게시판/사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조아라) 2021. 1. 23. 20:17반응형
글 쓸 때는 글 쓰는게 행복하다고 생각 안 했는데...다른 일을 하다보니까 글 쓰는 시간들이 소중했더라구요 8ㅁ8
주말 이후에 평일에 어떻게 일어나서 어떻게 출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병원에 사람도 많고 기다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가까운 약국에서 사람들이 많이 사 먹는 종합 감기약을 복용하고 겨우 학원에 도착했을 때, 약 기운에 피로가 몰려 들어오는 것 같았다.
" 오늘부터, 켈록, 큼흠.. 미안. "
분명, 졸리지 않는 걸로 달라고 했는데..
주말 이후에 잘 쉬지도 못 해서 피로가 누적되는 바람에 자꾸만 몸과 눈이 무거워지는 것 같다.
" 모의고사 풀어볼 거니까, 100분 보다 좀 빨리 끝낼 테니 다들 집중해서 풀어. "
곧 고3이 되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군말하지 않고 집중해서 문제지를 풀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미리 준비해놨던 풀이 해석과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를 위주로 풀이를 설명하기 위해 천천히 읽어보지만,
올라오는 열 기운 때문인지 글자가 날아다니는 것 같다.
평일 내내 출근하느라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더 이상 쉴 수도 없고 쉴 시간도 없으니까 약에 의존에 얼른 몸이 나아지길 기다려야 할 텐데..
지잉 -
" 아, 미안해. 계속 풀어! "
울리는 진동 소리에 학생들이 날 주목하는 바람에 미안해졌다.
' 형, 왜 연락이 없어.. '
' 많이 아픈 거야? '
' 병원 같이 갈까? '
직접 보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나를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 글자만 봐도 느껴진다.
수열이에게는 주말 이후로 딱 한 번 연락하고 연락을 한 적이 없다.
바빴기도 했고.. 무엇보다 연락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수열이에 대한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겠고,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매번 회피하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주치게 된다면 아직은 아무런 말도 못 하겠는 걸..
' 나만 너무 의식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연락하는 걸 보면.. '
곁에서 사라지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건 나인데..
정작 나에게 더 다가오려는 수열이가 어려워 도망치고만 있다.
이런 행동은 서로에게 독일뿐이지..
전과 다름없이 행동하겠다고 다짐했잖아..
다른 마음을 가져서는 안 돼.
민시형, 정신 차리자.
" 선생님? "
" 어? "
" 알람, 울리는데요? "
한 학생이 손을 들고 타임 어택을 맞춰놨던 시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느새 학생들과 약속했던 시간이 지났나 보다.
이렇게 홀로 생각할 때면 주변 사람들은 신경 쓰지 못하고 혼자서 빠져들고 말아서 문제다.
내가 있는 곳은 무려 돈을 받고 일하는 곳이고, 앞으로 대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들의 전쟁터니까..
내가 이렇게 딴생각하고 있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지.. 여기에만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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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모든 수업을 마치고 나니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물론, 수열이에게는 연락도 하지 못 한채 말이다.
뭐라고 보내면 좋을까..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켜놓은 채 5분이 지나가고, 일정 시간이 지나자 어두워진 핸드폰이 다시 밝은 빛을 띤다.
아직 답장도 보내지 못했는데, 수열이에게서 또 연락이 온 건가 싶어서 화면을 켜자
연락이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이권도였다.
" 작가님이 왜 연락하셨지.. "
평소에는 평범하게 인사를 하고 그냥 연락이 끊기는 게 대부분인데, 게다가 이런 시간에 연락을 한 건 저번에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있었던 일 이후로는 처음이다.
급한 일이라도 생기신건 가.. 아니면 주말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으시려나..??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가 보낸 문자를 바로 확인했다.
' 시형 씨, 아직도 몸 많이 안 좋아요? '
내가 감기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다는 말을 했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물론, 내가 먼저 거절할 수 있는 선에서는 다 거절하긴 했지만..
오늘이야말로 정말 뭔가를 챙겨주려고 하시는 건가?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권도에게서 작은 관심을 받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서 받는 관심과 애정은 늘 달고 더 원하게 되는 건 당연하니까.
' 아..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 '
거짓말이다.
사실 아까도 기침을 하다가 숨 넘어갈 뻔했다.
아무리 호의가 좋다고 하여도, 내 성격에 그걸 가만히 받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매번 거절하는 것도 죄송스러운데... 이번엔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말을 하면 작가님도 신경 안 쓰시겠지.
'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
' 작가님은 어디 아픈 곳 없으시죠? 감기 조심하세요! '
' 고마워요. 혹시, 시형 씨 언제 끝나요? '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는 걸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른 말이 나와서 좀 놀랐다.
언제 끝나냐는 말은 무슨 뜻이지? 오늘 일이 언제 끝나는지 물어보는 건가?
그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 음.. 어.. ' 만 쳐서 보내자
곧바로 이권도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사람은 가끔 행동력이 너무 빨라서 긴장도 못 하게 한다니까..
" 여보세요? "
" 시형 씨, 오늘 일 언제 끝나요? "
밤에 이권도의 목소리를 듣는 건 꽤 오랜만인 것 같다.
듣기 좋은 중저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뭐라 대답해야 할지 부담스러웠던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이권도와는 거리를 둘 필요가 없다.
그 사람도 만나는 사람이 있고, 나도.. 만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둘이 친구로서 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괜히 작가님을 어렵게 대한 것 같아서 죄송스러워진다.
" 아.. 사실 청소만 하고 가면 되는 거라.. 한 20분 뒤에 정리하고 갈 것 같아요. "
" 그럼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
" 네? "
" 나 기다린다고 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하고 와요. "
" 작가ㄴ..! "
잠 기운이 아직 가시질 않아서 집에 가면 바로 자려고 했는데, 이권도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잠이 전부 달아나고 말았다.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끊긴 전화 때문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미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서둘러서 내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저, 퇴근하겠습니다! "
" 민쌤, 왜 저렇게 급히 나가요? "
" 글쎄~ 애인이라도 밑에서 기다리나 보지. "
" 허.. 민쌤 솔로인 줄 알았는데 아쉽네.. "
학원에 남아 있는 선생님들께는 먼저 퇴근해서 죄송하다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느릿하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3층 계단을 빠르게 내려왔다.
중간에 넘어질 뻔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넘어지지 않았으니까.
바쁜 사람이 날 위해서 늦은 저녁, 앞까지 찾아왔다는데..
달리고 달려서 1층에 도착했을 때, 구두를 신은 발 끝과 긴 코트를 입고 핸드폰을 보면서 차에 기대어 있는 이권도가 눈에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기도 하지만, 작가님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급스러워지는 느낌이다.
저런 사람 주변에 사람이 안 꼬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저번 주까지 저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디저트 카페를 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도착하자마자 그가 기대어 있는 차로 가까이 다가가자 이권도가 보고 있던 핸드폰을 집어놓고 나를 향해 웃어준다.
" 작가님..! "
" 시형 씨, 왔어요? 수고 많았어요. "
" 추운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지 말고 차 안에서 기다리시지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
" 제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걸요. 그리고 1초라도 더 빨리 시형 씨 보고 싶었거든요. "
분명, 안에 있는 나보다는 밖에서 날 기다렸을 작가님의 얼굴이 더 붉어야 정상일 텐데
이권도의 말을 듣자마자 온 몸에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게 보고 싶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마치 사랑 고백을 들어버린 사람처럼 바로바로 반응해버리다니..
다시 살펴보니 작가님이 내 이상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아니 사실, 벗어나긴 커녕 너무 적합해서 문제다.
이권도 또한 붉어지고 있는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손을 올려 머리에 대곤 열을 재기 시작했다.
가까워지는 거리에 얼굴이 더 화끈 거리는 것 같았다.
" 시형 씨, 아직도 많이 아파요? "
" 아, 아직은 감기 기운이 있는데 괜찮아요! "
" 거짓말.. 우선, 차 안으로 들어와요. "
" 어, 저기.. 저희 어디 가나요? "
" 내가 시형 씨 잡아갈 것 같아요? "
이권도가 조수석 차문을 열어주곤 싱긋 웃는 모습을 본다면 어느 누구라도 자발적으로 납치를 응했을 것이다.
수열이도 정말 잘생겼는데.. 수열이가 순하고 강아지 같은 느낌이면, 이권도는 차가우면서도 귀티가 나는 얼굴이라 또 다른 면역이 필요한 것 같다.
잡아간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젓고 그가 문을 열어준 조수석에 앉았다.
차 안이 넓고 깔끔하다고 느꼈을 때 즈음 조수석 발 밑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이어 이권도가 운전석에 탑승했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다가왔고,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아버리니 쿡쿡대면서 웃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서 눈을 감은 건데, 작가님이 오해한 건 아니겠지?
절대로 키스할까 봐 눈을 감거나 뭔가를 기대한 건 절대로 아닌데 정말로 놀라서 그러는 건데..
어떻게든 이 상황을 어색하지 않게 하려고 허둥지둥 말을 꺼내려하자, 이권도의 입에서 먼저 말이 나왔다.
" 발 밑에 있는 봉투, 그거 시형 씨 주려고 샀어요. "
" 그렇구나.. 네?! "
조수석 밑에 있길래 뭔가 중요한 물건들인가 싶어서 발도 대려고 하지 않았는데, 날 위해서 준비한 거라고?
너무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권도를 바라보자, 이번엔 아예 발 밑으로 고개를 숙여서 종이 가방을 꺼내 내 품에 안겨준다.
" 지금 열어봐요. "
" 감, 감사합니다.. "
이권도에게서 받는 선물은 처음이다.
아직 작업실에 놀러 가지도 못 해서 준비한 선물을 주지 못 했는데, 이렇게 먼저 받아버리다니..
부스럭, 부스럭 -
" 어.. "
종이 가방에 손을 넣자마자 잡힌 것은 하얀 상자 안에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꽃차였다.
색깔도 알록달록해서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보며 바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자, 이권도 또한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차 핸들에 고개를 기대어 나를 쳐다보며 다정하게 웃는다.
한 번씩 작가님이 저렇게 설레게 할 때마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 오늘은 작가님이 준 선물에 눈을 고정시켰다.
" 감기 아직 다 안 나았을 텐데.. 그거 먹고 괜찮아졌으면 좋겠네요. "
" 감, 감사합니다.. 이런 거 처음 받아봐요.. "
" 예쁘죠? 처음에 보기 좋아서 샀는데, 밖에서 작업하고 오면 감기에 걸리는 게 일상이라 종종 꽃차 끓여서 먹었거든요.
감기에도 좋은 꽃차가 들어있으니까 여유 있을 때 끓여 먹고 자요. "
" 작가님도 감기에 걸리시는 구나.. "
" 아무리 완벽해 보인다고 해도 나도 사람인 걸요. "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줄 몰랐다.
게다가 거기에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이권도를 보며 웃음이 쿡 하고 새어 나오고 말았다.
아무리 완벽하고 질병과 멀어 보여도 인간적인 부분이 있다고 스스로 말하는 부분이 묘하게 재치 있어 보였으니까.
" 저번에 전화했을 때는 목소리가 많이 안 좋아서 걱정했는데, 오늘은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
" 사실 아침에도 많이 힘들었는 걸요.. 약 먹고 나아지는 줄 알았는데 이번 감기가 센 것 같아요. "
" 앞으로 더 추워진다고 했으니까, 몸 잘 챙겨요. "
" 감사합니다.. 매번 이렇게 챙겨주시고 제가 너무 죄송스러워지네요.. "
" 괜찮아요. 그래도 연락은 자주 해줬으면 좋겠어요. "
연락을 자주 하고 싶어도 이권도가 바쁠 것 같아서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혹시나 연락하는 사람이 있는데 괜히 방해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연락을 안 했던 것도 있었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권도를 조금씩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 죄송해요.. 요즘 일하고 오면 바로 뻗는 게 일상이라.. "
" 몸이 많이 안 좋으면 그럴 수 있죠. 그리고 보고 싶으면 이렇게 찾아오면 되는 거니까. "
" 앗, 괜찮아요..! 제가 더 자주 연락하면 되는 걸요! "
" 내가 보고 싶어서요. 아, 오늘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오진 않을 거니까 걱정마요. 오늘은 시형 씨 놀라게 하고 싶어서 온 거거든요. "
" 네.. 그래도 다음에는 작가님 편한 곳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더 오래 이야기할 수 있고 그리고.. "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데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니, 퇴근하고 있는 학원 선생님 한 분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역시 학원을 벗어나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을 텐데..
내가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이권도 또한 밖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더니 싱긋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한다.
곧이어 학원 선생님이 입을 가리더니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권도를 향해 90도 인사를 한다.
아무래도 이권도를 알고 있었나 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 사람이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이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내가 그의 사진을 좋아하고 그의 반듯한 얼굴을 좋아하고.. 남들과 다름없이 그의 완벽함을 동경하는 이유에서 비롯된 감정이 아닐까?
" 우선 많이 늦었으니까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
" 감사합니다.. "
내가 안전벨트를 착용한 것을 확인한 이권도는 차를 부드럽게 몰아 학원을 벗어났다.
붉은빛을 띠는 가로등을 지나치며, 그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는지 별 다른 일은 없었는지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가며 집 앞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아쉬움이 몰려들었다.
" 아쉽네요. 시형 씨랑 이야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
" 저도 그래요.. 작가님이랑 있으면 편해지는 것 같아요. "
" 정말요? "
처음에는 너무 완벽한 사람이기도 하고 벽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하다 보면 그런 걱정을 했던 시간이 무의미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다.
대화를 할 때도 일방적인 대화가 아니라,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했고 그가 말하는 말 한마디에 위로를 받을 때도 많았다.
내가 하는 말들이 작가님에게 닿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가 느꼈으면 좋겠다.
" 네, 정말로.. 작가님이랑 같이 있으면 편해져요. 고민도 다 사라지고, 즐거운 시간만 보내는 것 같아요. "
" 그런 말을 하면서도 속 안에 있는 고민은 털어놓지 않아서 조금 서운 하네요. "
" 티.. 났어요? 저 원래 티 잘 안 내는데.. "
" 제가 시형 씨한테 관심이 많아서 알아 차린 거죠. "
" 그.. 게 "
고민이 있는 건 사실이다.
수열이 때문에 잠을 못 이룬 적도 있었고, 지금도 연락이 오면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한다고 해도 계속 의식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나의 고민을 이 사람에게 말하면, 내가 듣고 싶은 해답을 들을 수 있을까?
사실 어느 누가 말해도 확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수열이 본인이 아닌 이상, 정말 맞다고 하는 대답을 들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도.. 지금 내가 이 사람한테 말해서 얻는 건 무엇일까..
아마도, 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을 그가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하게 되니깐..
" 친한 동생이랑 갑작스러운 일이 있었어요.. 자세한 상황은 말 못 하는데, 상대방은 아무렇지 않아 하지만 저는 많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
" 그래서요? "
" 그래서.. 연락도 피하게 되고,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은데.. 사실 제 마음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연락을 하면 의식하게 되고, 그렇다고 없었던 일처럼 하기엔 무의식이 거부를 하더라고요. "
" 동생이 실수라도 했어요? "
실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고의라고 할 수도 없다.
나를 위해서 했던 행동이라고 한다면, 그는 무슨 반응을 보일까..?
" 저를 위해서 했던 행동 같아요. "
" 그럼, 그게 시형 씨가 원했던 행동인가요? "
"... "
내가 수열이에게 키스를 받고 싶어 했나?
그건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수열이와 이런 스킨십 자체를 경계했었으니까.
우리 사이의 선이 모호해지는 것이 두려웠고,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 두려웠기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 아뇨.. 정말로 갑작스러웠던 거라.. "
" 그럼 동생의 실수죠. "
" 저를 위한 일인데도 실수인가요? "
" 시형 씨가 직접 해달라고 한 게 아니잖아요. "
이권도의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수열이가 갑작스럽게 그런 행동을 했던 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는 내가 누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테지만, 물론 나의 말만 듣고 하는 말일지라도..
내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있다.
마음 한 켠에서는 잠깐이라도 수열이를 보며 설레 했던 죄책감에 가슴이 쿡쿡 찌르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들어 이권도의 눈을 마주하자 죄책감 또한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수열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 작가님 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데. 그, 그 죄송합니다.. "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를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심장이 쿵쾅 거리는 것을 느끼고 눈을 재빠르게 피했다.
눈 앞에 있는 이권도는 누구나 좋아할 사람이긴 하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다.
나에겐 너무 과분한 사람을 좋아할 생각을 하다니, 게다가 수열이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자체도 수열이에게 미안해서 못 할 짓이다.
요즘 들어서 너무 들쑥날쑥해서 그런 거야.
진짜, 정신 차려 민 시형..!
" 시형 씨. "
" 네? "
" 시형 씨랑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말이죠.. 음.. "
핸들에 턱을 괴고 있던 그가 상체를 들어 기지개를 켜곤, 차 시트를 뒤로 빼더니 이야기를 천천히 해나간다.
" 세상 모든 죄책감을 혼자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무슨 일이 터져도 시형 씨 탓하고, 어디 가서든 사건 사고가 없길 바라는 사람 같아요. "
" 죄책감은.. 인정하지만, 어느 사람이든 안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건 당연한걸요. "
" 너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말이죠. 너무 안전을 추구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사건 사고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특별한 이벤트가 될 수 있는 거죠. "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천천히 대화의 주제를 생각해봐도 그가 품어 내고 있는 의미는 아직 알지 못하겠다.
" 오늘처럼 몰래 찾아가서 시형 씨를 본 나에겐 이벤트가 될 지라도, 너무 갑작스럽게 나의 부름에 달려온 시형 씨에겐 사고라고 할 수도 있는 거죠. 다른 일이라도 겹쳤으면 꽤 곤란했을 텐데. 그렇죠? "
" 그렇죠.. "
" 그러니까, 모든 일에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요. 갑작스러웠지만 오늘 우리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사실이고, 뒤처리를 해야 할 것도, 죄책감을 가질 일도 생기지 않았어요. "
" 네.. "
작가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냥 집에 가서 쉬려고 했고, 작가님의 전화를 받고 불안함에 떨었던 것은 사실이다.
어찌 보면 예상할 수 없었던 일에 겁을 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작가님을 만나 선물을 받고, 집에 가는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이야기로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지금은 행복한 추억으로 남는 순간이다.
나와 수열이 사이에 일어난 일들도..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수도 있지만, 그땐 그랬었지 하며 웃어넘기는 추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 감사, 합니다.. "
" 울어요? "
" 아, 아뇨.. 매번 작가님께 너무 좋은 말만 들어서요. "
" 나도 시형 씨한테 많은 걸 배워가는 걸요. "
" 제가 해드린 건 없는데.. "
"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나의 세계 안에, 시형 씨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뜻이죠. "
" 작가님은..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세요? "
물어보고 싶었다.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건지, 겨우 후배의 친구로서 인맥으로서 나를 챙겨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는 나에게 바라는 것 또한 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먼저 나에게 연락해서,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이야기를 하고, 이렇게 날 챙겨주는 걸까.
혹시라도 다른 이유가 있을까..
" 시형 씨한테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면 폭탄 하나 더 안고 가겠는데요? "
" 네..? "
슥-
의자 시트를 뒤로 충분히 뺀 그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꼭 끌어안아줬다.
뿌리칠 생각도 하지 못 한채 그의 품에 안겨 있자 나의 등을 다정하게 쓸어주던 그가 내 귓가에 속삭인다.
" 오늘은 친구로서 위로해주는 거지만, 앞으로 내 앞에서 다른 남자 이야기 꺼내면 화낼 거예요. "
" ㄴ, 네? "
" 나 질투 많거든요. "
친한 동생이 남자라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으며, 지금 나에게 질투가 많다고 하는 것은.. 설마.
" 저, 저, 조.. 아 하세요? "
" 많이 아낀다는 거죠. "
좋아한다는 거랑 아낀다는 것은 차이가 있는 걸까?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가 내 허리춤에 있는 안전벨트를 풀어주고 먼저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준 가방을 품에 안고 내리자
구겨진 코트와 옷깃을 잘 정돈해준 뒤 가볍게 인사를 하곤 다시 차에 오른다.
" 들어가요 시형 씨. 오늘 만나줘서 고마웠어요. "
" 제가 더 감사한걸요.. "
" 다음에 또 연락할게요. "
" 들, 들어가세요.. "
이번에는 이권도의 차가 먼저 자리에서 떠났고, 그가 타고 있는 차가 골목을 돌아 사라지는 것을 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 형.. "
" 수열아..? "
수열이를 마주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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