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당신의 곁에 서 있는 사람은 오직 나여야해.
주말 이후로 평일 내내 형과 제대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적이 없다.
처음에는 바빠서 그런 줄 알았고 그가 나를 피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형은 나를 두고 어디로 갈 사람이 아니니까.
연락이 뜸해지고 하루가 지났을 때 문자를 남겼고, 그 문자는 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다음 날 전화를 걸었을 때 응답을 받지 못했고 그제야 알았다.
내 눈 앞에 있다고 생각해서 완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됐다는 걸.
형 집 앞을 종종 서성이면서 형과 마주치기 위해 기다렸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아서 마주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고, 연락을 하면 만나기를 꺼려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애타는 속을 겨우 달랬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형의 집 앞에서 그의 모습을 그리며 기다렸다.
더 다가가지 않을 테니까, 이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욕심내지 않을 테니까.. 나를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욕심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1시간이 지나고, 밤 길이 어두워지는 사이에 멀리서 걸어오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추운 날 겨우 코트 하나만에 의지해서 고개를 파묻고 걸어오는 그의 손에 무언가가 쥐어져 있던 게 보였고, 곧이어 그를 태우고 있던 차가 멀어진다.
말하지 않아도,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새끼와 같이 있었구나.
" 형.. "
나를 피한 이유가 뭐야?
그렇게 피해서 찾아간 사람이 겨우 저 새끼야?
" 수열아..? "
흔들리는 그의 눈을 잘못 본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형, 뭔가를 잘못 봤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 마.
불편한 사람을 보듯이 나를 바라보지 마.
" 연락을 안 받아서 걱정했어. "
" 미안해.. 요즘 학원 일이 많아서.. "
" 이제 퇴근했어? "
" 너,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던 거야..! 감기 걸리잖아! "
천천히 걸어와서 나에게 다정스레 내미는 손을 거칠게 휘어잡고 아무도 보지 못 하는 곳으로 끌고 가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내 연락을 무시하지 말라고, 나 이외의 사람에게 틈조차 보여주지 말라고..
뭐든 내가 잘못했으니까, 내게서 멀어지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 형은 아픈 곳 없어 보여서 다행이네.. "
" 최수열.. "
참고 참고 참아서 겨우 얻어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입맞춤 하나에 달아나버려선 다른 사람에게 틈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늘 그의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런 그를 나 혼자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다.
내가 먼저 좋아했어.
그 누구보다도 내가 형을 가장 많이 좋아하고 가장 많이 아는 걸..
" 우선 집으로 가자.. 응? 진짜 감기 걸리겠어 이러다가.. "
" 형. "
" 형이 미안해.. 피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우선 추우니까 들어와서 이야기하자. "
둘 다 밖에 있어서 손이 차가웠지만, 내 손을 맞잡은 그의 손은 따뜻하다 못해 따가웠다.
그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어느 때보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슴이 시리고 하고 싶은 말들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 한채 그의 손을 맞잡은 상태로 집 앞에 서있었다.
내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자 점점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나로 인해서 그렇게 불안해하고 어쩔 줄 몰라하잖아.
근데 왜 나에게 거리를 두려고 하고, 그 사람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거야.
" 수열아 형이 연락을 피하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바빠서 그랬어.. 학생들도 많이 몰리고 모의고사도 준비해야 해서.. "
그가 나에게 종종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을 하긴 했다.
그게 이유가 된다면 이유가 될 테지만, 하지만 형이 이렇게 내 눈을 피할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 형이 날 피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정말로 바빠서 그랬잖아? "
".. 응 "
" 형이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앞으로 바쁘면 연락 줄일게. "
" 아냐! 괜찮아! "
" 형이 바빠서 연락도 못 하는데 내가 너무 재촉했던 것 같아.. 멋대로 찾아오지도 않을게. "
나는 그의 다정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다정함이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나에게 조금 더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쌍한 척 몇 걸음 물러나서 그가 원하는 대로 비유를 맞춰주면, 자신이 욕심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가올 사람이니까. 어릴 때도 형의 다정함을 이용했던 적이 종종 있지만, 사람들은 내가 형을 좋아하고 형을 많이 따라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맞아.
난 형을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형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거야.
" 수열아.. 형이 미안해.. "
" 형을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 "
그가 다시 한번 내 이름을 부르며 천천히 다가와 나를 꼭 껴안아 준다.
나보다 더 작고 연약한 사람이 겨우 우는 소리 한 번에 모든 것을 내줄 것처럼 내 품에 안긴다.
나를 끌어안은 품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더욱 꽉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니 다정한 손길로 등을 쓸어내려준다.
내가 바라보는 곳에 형이 있고, 형이 바라보는 곳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생각하는 미래에 형이 있고, 그 미래에 당연스럽게 형이 날 사랑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점점 그게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고 있잖아.
" 형.. 좋아해. "
" 어? "
그를 끌어안고 있는 어깨가 갑자기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동생으로서 좋아한다고 생각했겠지만, 둘 사이에 있었던 스킨십은 결코 동생의 목적으로 한 게 아니란 걸 그도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연락을 피한 것도, 지금 나를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도 혼란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몸이 굳어지고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는 거겠지.
아직 그에게 마음을 전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을까?
애초에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올까?
그렇다면, 이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인가?
부정적인 물음표들 사이에서 답을 찾기란 어려웠다.
당연하게도 확신에 찬 답 또한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
" 형이 날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형이 너무 좋은데.. 잠시라도 형이 없어지면 또 외롭게 지내야 하는 게 싫어. "
" 형도 수열이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걸.. 우리 수열이 두고 어디 안 가니까 걱정 마. "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곤 날 떠나지 말라는 대답뿐이었다.
그가 그토록 약한 모습을 보였던 부분을 파고들어 빈틈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그리고 끝내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보다, 사랑한다는 말에 얼굴을 붉힐 날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면..
" 어, 눈 온다.. "
' 형, 사랑해. '
말하지 못 한 고백을 속으로 되새기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시간이 지나서, 여리게 흩날리는 눈 사이에서 설렘 가득한 얼굴을 한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이 사람의 입술에 입을 맞출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간절히 바라며 오늘의 다짐을 다시 한번 묻어둔다.
-
그 이후로 꽤 많은 눈이 내렸다.
대설특보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하는 형에게 잘 다녀오라는 문자만을 주고받고 직접적인 만남도, 통화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때 있었던 날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사람과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지, 내가 없는 날에는 그 사람과 함께 보내고 있는 건지..
나 이외의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어리광을 부릴 것 같아서 최대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 너 오늘 이렇게 많이 마셔도 돼? 술 못 하는 놈이.. "
" 시형이 형.. "
" 하아.. "
갑자기 오늘 연락이 와서 술자리를 가지자는 수열의 말에 어렴풋이 민태는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에 술을 즐겨하지 않는 수열이고 술도 약하기 때문에 자주 마시지 않는 사람인데 술을 굳이 찾는 건,
그가 평소처럼 지내기 힘들어서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스스로를 다독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니까.
술을 마시기 전에 그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있었던 일에 대해서 차분하게 털어놓았다.
분명 술이 들어가기 전에는 끄떡도 안 했던 그의 눈가가 점점 젖어가고 있었지만, 스스로가 느끼지 못할 만큼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매번, 민시형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 속상하다 ' , ' 힘들다 ' 등의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오늘처럼 하늘이 무너져 내려버린 듯한 표정은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 시형이 형.. "
" 최수열 정신 차려. "
" 시형이 형... "
어쩌자고 이 약한 놈한테 술병을 쥐어줬을까..
잠시 후회가 됐지만, 내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 녀석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줄까 싶기도 하고..
중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지만, 갑작스럽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가 입이 닳도록 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있는 형이니까.
처음에는 동경의 대상으로 알고 있었지만, 알고 싶지 않은 몽정의 대상이라던가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을 때면 가끔 탈선을 하는 모습도 종종 봤으니까.
" 최수열 가자. 택시 불렀으니까. "
" 어딜..? "
" 어디긴 너네 집으로 가야지. "
" 시형이 형.. "
술 취한 놈들은 이래서 싫다.
매번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고, 또 대답해주면 이번에는 상대방이 알아듣질 못한다.
술 취한 놈한테 무슨 말을 얻어내려고 하아..
최수열 주머니를 뒤져서 나온 카드를 들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겨우 이 녀석을 끌고 나오니 이번에는 주변에서 누군가가 자꾸만 기웃거리는 게 느껴진다.
불쌍해 보이면 좀 도와주면 좋으련만 도대체 누구길래 저렇게 기웃거리나 싶어서 확인을 해보니, 종종 학교에서 수열이와 만나고 있을 때 마주쳤던 녀석이다.
" 어, 최수열 선배님..? "
" 지금 수열이가 취해서 대답하기 힘든 상황이거든? "
" 아.. 죄송해요! 그, 도와드릴게요! "
도와주겠다는 손길을 마다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양쪽에서 최수열을 부축하는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 향이 최수열을 부축한 사람에게서 난다.
수열이 가장 아끼는 향수이자, 민시형이 자주 뿌리고 다녔다며 입이 닳도록 말했던 ' 그 향수 ' 향이 난다.
뭐, 그 향수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은가 보지..
" 기사님, X 오피스텔로 가주세요. 아, 그리고 고맙다 수열이한테는 말해줄게. "
" 괜찮으시다면.. 제가 더 도와드릴 수 있는데.. "
" 어? 뭐.. 그래. "
집까지 함께 가겠다는 말에 찜찜했지만 그래도 선한 마음에 도와준다는 것 같고, 수열이를 아는 거 보니까 괜찮겠지 싶어서 그와 함께 택시에 탑승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남자 3명이서 뒷자리는 너무 빠듯할 것 같아서 그를 앞으로 보내려고 했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뒤에 있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차마 거절을 할 수 없어서 결국 내가 앞으로 타게 되었다.
' 학과 내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아니면 최수열이 후배들을 잘 챙기는 성격인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것도 아니면 어디서 만났길래 술 취한 선배를 직접 도와주겠다고 그러는 거지? '
" 수열이가 술에 약해서.. 괜히 너 선약 있는데 도와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
" 괜찮습니다! "
" 시형이 형 냄새.. "
" 야.. 최수열! "
앞좌석에 설치되어 있는 거울을 통해서 그들의 상태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최수열 저 미친 자식이 술에 취해도 그렇지 사람 구분도 못하고 품에 안겨서 머리를 비비고 있는 꼴과 그걸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후배라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당장 떨어트려야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 학생 그래서 저기 앞에서 우회전? "
" 아뇨, 바로 앞에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시고 바로 좌회전하시면 나와요. "
얼른 집으로 도착해서 저 녀석들을 떨어놓는 일이다.
수열이 자취방이 눈 앞에 보이자마자 주머니 안에 있는 만원을 꺼내곤 거스름 돈은 됐다는 모션을 취한 뒤 서둘러 조수석에서 내렸다.
" 기사님 감사합니다! 야! 내려내려!! "
수열이와 함께 동석했던 후배 녀석이 아쉽다는 표정을 숨길 마음은 전혀 없는 건지 수열이의 손을 꽉 잡은 채..?
아니, 씨발 언제 둘이 깍지까지 끼고 있던 거야?
" 그, 누구냐, 너, 그.. "
" 조윤입니다! "
" 그래, 너 어디서 살아? 집에 안 가도 돼? "
" 아.. "
그의 목적이 오직 수열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너무 대책 없이 따라온 거 아니냐고..
" 자. 내가 차비 줄테니까 오늘은 알아서 가야겠다. 미안하다. "
" 아녜요!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
얼굴 붉히지 마 이 자식아..
내 품에 기대어 있으면서도 조윤의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최수열을 보니 더 환장할 노릇이다.
최수열아.. 네가 제정신이 아닌 건 알겠지만, 나중에 이상한 이야기 나오면 어쩌려고 이러냐..
" 그럼 들어가세요 선배님! "
" 어, 그래.. "
오늘 장난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장난 아닌 일들이 일어나버려서 찜찜하고 혼란스러운데
속 편하게 잠이나 자고 있는..
" 훌쩍, 혀엉.. "
속은 불편하겠지만 잠이나 자고 있는 최수열을 자취방 침대에 구겨 넣듯이 집어던져버리고 술 깨면 연락하라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
시간이 많이 지나고 검은 하늘이 점차 파랗게 물들어 가고 있을 때, 문득 그리운 향에 취해 오랜만에 편하게 자고 일어났다.
어제 그렇게 많이 마시고 나서 정신을 잃었지만, 그 향기는 잊을 수 없었다.
형이 자주 사용하던 향수 향이 났었고 내 손을 잡고 있던 사람이 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술 먹을 때 내가 취해도 절대로 형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연락을 했던 걸까?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형을 잠시라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눌러 담았던 마음이 다시 넘치는 것 같았지만 아주 잠시만 이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 지잉 - '
" 아.. 누구야. "
과음으로 인해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받으니,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지금 시대에 장난 전화를 거는 놈도 있나 싶어서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어제 술을 함께 마셨던 민태다.
전화를 걸어놓고 왜 말을 안 하는데..
안 그래도 방해받아서 열 받게 하네..?
" 왜 말을 안 하는데.. "
" 너, 진짜 어제 미쳤던 건 아냐? "
" 기억 안 나.. "
" 미친놈.. 진짜 개 미친놈.. "
" 싸울까? "
무작정 전화를 해서 대답을 하지도 않고, 이젠 욕부터 박아대는 이 새낄 어떻게 조져버릴까..
" 너 어제 기억나냐? "
" 기억 안 난다고 2번 말한다.. "
" 어제 너 데려다준 사람 기억나냐고. "
" 시형이 형 아냐? "
" 지랄.. "
영문도 모르고 계속 욕을 먹고 있으니까 슬슬 기분이 나빠진다.
안 그래도 요즘 시형이 형 못 만나서 자꾸 불안한 생각만 하는 와중에 오랜만에 포근한 느낌을 받았는데.. 씨발..
계속 이딴 식으로 나오는 민태 놈 때문에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핸드폰을 스피커 폰으로 돌려놓고 샤워를 할 준비를 하자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져 귀가 아프다.
" 야!! 최수열!! "
" 그래서 어제 데려다준 사람이 누군데. "
" 조윤? 야 조윤이라고 아냐? "
" 그게 누군데? "
" 와.. 미친 걘 너 알고 있던데? "
머리를 감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떠오르는 얼굴에 ' 아. ' 하고 멍청한 소리를 내자,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더 열불을 내기 시작한다.
조윤? 예전에 다 같이 MT 갔었을 때, 술 먹고 힘들어 보이길래 등 두들겨 주고.. 대신 마셔주고 한 번 도와줬는데 근데 걔가 왜?
" 아? 아!!? 아!!!? "
" 너 때문에 옆 집 사람들 쫓아오면 너네 집에서 같이 살 줄 알아라. 아니다, 시형이 형 집에서 지내야지.. "
" 제발 속 터지는 소리 좀 그만하고.. 걔가 너 데려다줬던 건 기억 안 나? "
" 안 나. "
" 둘이 껴안고 손 꼭 잡고 있던 것도 기억 안 난다고? "
" 뭐? "
이건 또 무슨 좆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지금 누구랑 뭘 했다고?
" 너 취해가지고 조윤한테 안겨서 아주 얼굴 부비고 손깍지 끼고 난리가 아니었어! "
" 싸우자는 말을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되는 거지, 왜 사람 신경을 건드려? "
" 내가 씨발, 지금 너랑 장난으로 이런 말 하겠냐!!? 어제 누구 때문에 만났는데! "
친하지도 않고, MT 이후로 얼굴도 몇 번 본 적 없어서 마주친 적도 드물었는데..
그때 도와준 게 고마워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너무 익숙한 향이 나서 나도 모르게 시형이 형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에 아침에 좋았던 기분이 엉망이 돼버렸다.
결국, 내가 기분에 취해 있던 것은 다 허무한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하아.. "
" 야.. 설마 조윤도 그쪽이냐? "
" 내가 어떻게 알아. "
" 조윤이 어제 너랑 있으면서 좋아 죽을 것 같길래 그런다. "
" 어쩌라고. "
알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바라고 있는 대상을 다른 사람과 착각했단 사실도 불쾌하게 짝이 없는데, 그 사람과 아주 옅은 스킨십을 했다는 것 까지 짜증이 났다. 또한, 얼굴도 기억이 날까 말까 하는 사람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줬단 것도 열 받는다.
" 끊어. "
" 야!! ㄴ..! "
말이 더 들려오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리고 샤워를 끝마친 뒤 욕실에서 나왔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 조윤 '이라고 이름이 저장되어 있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선배님, 어제 많이 취하신 것 같아서 걱정돼서 보내드립니다. [ 숙취해소제 ]
저번에 저 도와주신 것도 있고, 제가 점심이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연락 주세요!
혹시라도 불편하시면 죄송합니다. 그럼 몸 건강하게 챙기세요! '
대충 읽어봤지만 별로 영양가 없는 내용 같아서 답장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프로필 사진엔 눈길이 갔다.
하얀 강아지를 안은 채로 웃고 있는 사진.
얼핏 MT에서 봤던 얼굴과 비슷했던 것 같아서 그 사진을 누르고 확인했다.
형이랑 닮은 구석은 없지만, 뭔가 몸이 약해 보이고 일 하나 제대로 못할 것 같이 생긴 건 닮은 것 같다.
아, 또 하나 닮은 게 있었지..
향수.
' 챙겨줘서 고마워. '
' 도움을 받은 건 난데, 내가 밥을 사야지. '
' 지금 볼 수 있을까? 사과도 해야 할 것 같고. '
다른 마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만나 보고 싶었다.
혹시라도 내가 형이랑 착각할 정도로 비슷한 사람인 건지, 아니면 술기운에 정말 실수를 했던 건지.
형이랑 아예 똑같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 그럴 일은 없지. "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는 답장을 받고, 형이랑 만났던 것만큼 정성을 들이지 않고 편하게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