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일기장 [연하공,죽음수]
https://www.youtube.com/watch?v=LdBF1TsnOYg
2015. 09. 22.
내가 잡을 수 없다면
내가 놓아줘야 하는 걸까?
애초에 내 사람이 아니었다면
바라보지도 말았어야 했던 걸까?
형,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해본적 없어
한 순간도 형이 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적 없어
형이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우선시 하는 것도 생각해본적 없어
이렇게 손을 마주 잡고 있는게 언제나 형이라고 생각했지
나외에 다른 사람과 마주하며 웃고, 사랑을 속삭이는 걸 상상해본적 없어
생겨서는 안돼.
없어야 해.
나의 인생과 형의 인생 사이에 다른 사람이 들어갈 틈 조차 없어야해.
나와의 추억을 다른 사람과의 기억들로 뒤덮지마.
형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아.
날 떠나지마
날 벗어나려고 하지마
날 지우지마.
2015. 10. 04.
미안해 형.
오늘은 형을 화나게 할 생각이 없었어.
그저 형을 웃게 하고 싶었던게 더 컸지만
그래도 잠깐이라도 형의 관심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어.
내가 많이 다쳐서 형이 많이 놀란 것 같아.
그래도 모든 일 다 던져놓고 나한테 뛰어온 형이 좋았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덤덤하게 날 다독이고
형 모습 그대로 흔들리지 않고 내 곁을 지켜주는 형이 좋았어.
입원 했으니까 자주 나에게 찾아오겠지?
나 너무 기뻐 형.
형을 위해서라면 매일 계단을 구르든 오토바이에 치이든 다 상관 없을것 같아.
그래도 다친 손으로는 형을 안을 수 없고
내 아픈 모습을 보면서 매일 가슴 아파하는 형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적당히 할게.
2015. 10. 16.
형 보고싶어.
형이 바쁜 건 알지만, 그래도 늦게라도 날 찾아와줬으면 좋겠어서 그 병실에 계속 앉아 있었어.
힘 없이 전화를 받는 목소리도 늦어지는 답장도 다 괜찮아.
나 아직 그 자리에 있어.
형 얼른 와.
보고싶어.
2015. 11. 28.
웃는 얼굴로 학교 정문에서 나를 맞이해주는 형이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놓고 봤어.
가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걸치고 있는 베이지색 코트는 형한테 너무 잘 어울렸고
얼마 전에 미용실 가서 망쳤다는 머리는 벌써 많이 자라서 조금 더 귀여워 보였어.
내가 좋아하는 빵가게에 가서 사온 빵을 흔들어 보이며
나를 향해 웃는 형이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곧장 달려가서 형을 안아버렸어.
퇴원할 때 찾아가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형의 웅얼거림이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대답하지 않았어.
형은 내게 미안할 일을 만들어도 난 형을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을테니까.
그저 이렇게 나만을 위한 행동을 할 때마다 형을 점점 더 사랑하게 돼.
사랑해 형.
2015. 12. 21.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함께 보내자고 했지만,
형은 아직까지는 가족의 따스함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 나와의 약속은 내년으로 미뤘어.
나를 바라보면서 미안하다고 손을 맞잡고 다음을 기약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나에게 주문을 걸어주는 것 같았어.
우리 다음에는 꼭 행복하게 보내자, 우리 다음에는 꼭 함께하자.
그 말이 듣기 좋아서 계속 고개만 끄덕이며 형을 바라봤던 것 같아.
다음에는 꼭 행복하자.
다음에는 꼭 함께하자.
다음에는 꼭 함께 사랑하자 형.
2016. 01. 01.
새해가 시작하는 동시에 소원을 빌었어.
이번 년도에는 꼭 형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오게 해달라고
나와 마주하는 시선 끝에 형의 뒷모습이 아니라
형과 눈을 마쥐게 해달라고 빌었어.
형은 무슨 소원을 빌었어?
나랑 같은 마음이면 좋겠어.
2016. 02. 21.
생일 축하해 형.
형을 만나면서 하루도 빠짐 없이 행복했어.
비록 오늘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형이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면 해.
선물은 뭘 받았을까
오늘은 뭘 먹었을까
누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을까
모두 궁금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형의 날이니까.
내 어린 욕심보다는 형을 존중하고 싶어.
생일 축하해.
사랑해.
2016. 05. 08.
우리는 잘 지내왔는데, 늘 주말마다 함께 만나서 밥을 먹고 혼자 살고 있는 형의 집으로 가서 영화를 보다가 잠에 들기도 하고
늦은 밤 일어나면 형이 라면을 끓여주면서 나의 고민에 대해서 들어주기도 하고, 내가 안쓰러워 보일 때마다 나의 머리칼을 쓸어주면서
무슨 일이 있든 나의 편이라고 해주던 형을 다른 사람에게 뺏긴 기분이야.
나만을 향해야 했던 다정함은 어느새 다른 사람을 향해 웃어주고 있었고,
우리가 즐겁게 보내던 주말이라는 시간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어.
형 그거 알고 있어?
형이 나와 연락하지 않은지 지금 두달이 넘어가고 있어.
지금 형이 안겨주던 따스함도, 형의 웅얼거리던 목소리도 희미해져가.
날 찾아와줘 형.
제발 그 사람 버리고 나한테 와줘.
2016. 07. 23.
내 생일에 특별한 생일 선물이 받고 싶었다면 물론 형, 그 자체를 달라고 말했을거야.
근데 이런 모습을 원하지 않았어.
술에 취한채로 만신창이인 형이
다 뭉게진 케이크 상자를 들고 와서
생일 축하 노래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곱씹으며 이별 노래를 듣고
내 어깨에 기대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어.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형 얼굴이라 좋았어.
그리고 혼자가 된 형을 다시 내가 독차지 할 수 있다는 것에 바보처럼 행복해졌어.
형은 오늘 많이 취해서 몰랐겠지만, 오늘은 달이 너무 예뻤어 형.
다음에는 나와 함께 고개 들고 웃는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면 좋겠어.
생일 축하해줘서 고마워 형.
나쁘지 않은 생일 선물이었어.
2016. 07. 30.
오랜만에 함께 보내는 주말이지만, 형은 그 사람을 아직도 잊지 못한 것 같아.
날 바라보는 형의 눈에서 다른 사람을 바라 보지마.
제발 나만을 바라봐줘.
내가 노력할게.
그 사람의 빈자리를 나로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형이 외로울 때마다 어깨를 빌려줄게
같이 울어달라면 울어줄 수 있고, 웃어달라면 입꼬리를 끌어 올려서라도 웃어줄 수 있어.
형, 나는 형을 울리지 않아.
난 형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한테 기대서 칭얼거려줘
힘들수록 날 더 찾아줘.
..
아직까지도 어리게 보이겠지만, 내가 형과 같은 나이가 된다면 그땐 날 어른으로 봐줄까?
2016. 08. 15.
형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아. 요즘은 자주 웃고, 장난도 자주 걸고 나를 대하는게 전과 같이 편해진 것 같아서 보기 좋아.
나 또한 형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 귀엽게 굴려고 노력하고 있어.
근데 형이 자꾸만 나를 쓰다듬을 때나, 날 향해서 웃어 줄 때..
요즘 들어서는 자꾸 참을 수 없게 돼
나도 형을 쓰다듬고 싶어..
머리를 헝크러트리고 내 품에 안아서 형 몸에서 나는 체향을 마음껏 느끼고 싶어.
형이 사랑한 그 사람과는 뭘 했어?
나도 그 사람처럼 형의 몰랐던 모습까지 다 알고싶어.
형이 나에게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고싶어.
2016. 09. 30.
나에게 애인 사귈 생각 없냐고 물어보는 형이 오늘은 좀 괘씸해서 대답 하지 않았어.
형은 내가 사춘기라 삐진줄 알고 맛있는거 사주겠다고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는데..
내가 애인 사귈 생각이 없는게 아니라 아직 못 사귀는거야.
형이 날 남자로 봐줘야 그때부터 사귈 생각을 하는거지.
사귀고 싶어 당신이랑. 키스도 하고 싶고 손도 잡고 싶어.
주말에 이런 영화를 보는게 아니라 성인 영화를 보면서 천천히 분위기 잡고 당신이랑 키스 하면서 서로를 탐하고 싶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 못하겠지 형은?
내 사춘기 시절에 꿨던 모든 몽정과 욕망은 오로지 형에게서 비롯된 것인데.
2016. 10. 11.
술에 취한 형을 보게 된 건 오늘이 두번째야.
저번에 말하지 못 했지만, 형은 술주정이 형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주변 사람에게 기대서 얼굴을 부비고, 마치 사랑을 갈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형이 귀여웠어.
늘 어른스럽게만 행동하려 하고, 늘 앞장 스려고 했던 형의 모습에서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경계심을 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형에게 빠지는 것 같아.
얼굴을 어루어 만지는 내 손길을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천천히 느끼는 이 순간이 선물 같았어.
이럴수록 더욱 더 형을 가지고 싶어.
2016. 11. 15.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말이 하고싶었는지
난 언제나 형을 기다렸는데
나에겐 그저 침묵을 유지한채 아무말도 하지 않는 형을 달래고 어루어 만져줬어.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형이
요즘은 내 앞에서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게 너무 기뻐
하지만 아직도 형에게 나는 어린 동생인가봐.
형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면 안 될까
형에 모든 걸 알고 싶어
누굴 만났는지
그 사람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도 잊지 못한 건지.
소년이 써내려간 일기장은 겨우 한 권이 아니라 책장 한 곳을 가득 채울 만큼 꽤 많았다.
어린 시절에 자신의 손과 가슴에 새길 수 없었기에 이런 곳에라도 자신의 마음을 새겨 써내려간 것 같았다.
일기는 쉴새 없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덤덤해지는 일기장 주인공과
그리고 일기의 마지막 장을 폈을 땐 이미 그가 많은 다짐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이후였다.
2019. 12. 19.
당신이 없는 세상이 많이 외로울 것 같았지만, 참을만 했어.
보고싶어도 볼 수 없고 목소리 조차 들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당신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게 당연히 불가능 했던 일이고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난 하나씩 새겨 갔던 것을 풀어내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쉽게 떠나갈 사람이라면 내 마음 하나 안겨서 보내는 것도 무리 없었을텐데
뭐가 그렇게 바빠서 일찍 가버렸는지 모르겠네
언제나 형은 내 앞에서는 침묵 아니면 미소뿐이니까.
보고싶다.
연말에 보러갈게.
시간이 많이 흘러 소년에서 남자로 자라난 글씨체는
어릴 적 처럼 많은 것을 담아내고 싶었지만 일부로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이젠 자신의 이야기만을 새겨 나간 일기장 마저도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운 것이다.
" 덤덤한 척 하기는.. "
일기장의 주인공은.
내가 아는 너는.
늘 사랑 받기를 원하면서도 사랑을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사람이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가 낮았지만 점점 높아질수록 나에 대한 욕심 또한 커져가는 것을 보고 외면하려고 했다.
내가 수많은 날을 울며 매달렸던 연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였고
닿고싶지만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닿지 못했던 너에게 늘 눈물로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나서는.. 이렇게 너의 곁에 더이상 다가갈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랑을 주고 받는 일은 ..
우리에겐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 많이 좋아했다고 말 해 줄 걸 "
후회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잘 만든 것 같다.
네가 나를 일기장에 새겨 넣었듯이
이제 내가 나의 눈과 마음에 너를 새겨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