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폭상팔 2021. 4. 1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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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NA9YvKzA00Q


한국을 떠나자마자 무작정 떠난 곳은 캐나다였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주변에서 캐나다 여행을 다녀왔던 선배님과 함께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 아마 내 직위와 돈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면..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어. '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봤을 때 캐나다의 풍경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캐나다로 무작정 떠난 것은 아니었다. 

 

삶에 색다른 변화를 주고 싶었고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게 된다면, 그들에게 의지하지 못할뿐더러 강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전을 했던 것도 있다. 

 

 

처음에 오자마자 했던 것은 내가 살게 된 집 주변에서의 캐나다 풍경을 눈에 담는 일이었고, 두 번째로는 내가 본격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번화가 식당에서 일하면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적도 아주 가끔 있었지만, 사람들이 적은 시골로 자리를 옮기니 그래도 손님들 대부분이 나를 흥미롭게 보는 것 같았다. 

 

먼저 손을 내밀어서 인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내가 살아온 도시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나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며, 평범한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찾기 쉬운 것이라고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 시형, 이번에도 초대장이 도착했는데? "

 

처음 낯선 땅에서 자리를 잡을 때 사기도 당하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다.

 

가게에서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당하고 있을 때, 지금 내 앞에 있는 티나에게 도움을 받았고 티나의 자식들이 한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말을 듣고 반가움에 그녀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티나가 운영하고 있는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 아, 고마워요 티나. "

 

" 이번에도 안 가는 거야? "

 

[ The 2nd Photo Exhibition : in Paris ] 

 

흰 봉투에서 나온 티켓은 파란색 배경에 흰 글씨로 깔끔하게 써져있었고, 티켓을 손으로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 다시 흰 봉투 안으로 티켓을 넣어버렸다. 

 

" 이번에는 파리에서 하는데.. 좀 어려울 것 같네요. 하하 "

 

" 비행기표 끊어줄 테니까 바람 좀 쐬고 오던가 하지.. "

 

" 괜찮아요~ 여기 쌓여있는 과일들 가게에 두고 오면 되는 거죠? " 

 

" 그래그래, 부탁할게! "

 

캐나다에서 생활한지는 2년이 넘어가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살고 있는 곳마다 사진 전시회 티켓이 날아왔다.

 

그리고 3번의 이사를 끝에 계속 따라오는 티켓의 정체가 이권도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벚꽃이 지는 어느 봄날 : 광주 ]

 

[ LKD & Mount : 특별 전시회 ] 

 

" 하나 더 모였네.. "

 

이권도가 내게 보내준 티켓들이 많지는 않아도, 마치 그의 작품을 상자 안에 보관하듯 조심스럽게 티켓을 보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곁에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유명해져 버린 사람이 아직까지도 나를 기억해준다는 것에 고마우면서도.. 

내가 변화하려고 그들에게서 벗어났는데 나는 많은 것이 달라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짓어진다. 

 

" 이번 전시회는 꽤 짧게 하시네.. "

 

딱 3일만 하는 전시회라 만약 간다고 해도 비행기 시간으로 인해서 이미 전시회가 물 건너갈 것이다.

 

물론, 아직 그를 마주할 자신이 없는 게 더 크지만 말이다..

 

" 시형! 한국에서 전화 왔어! "

 

" 알겠어요! "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다급하게 뛰어가니 티나가 들고 있던 수화기를 나에게 내민다. 

 

" 야~ 민시형! 이번 주도 잘 지냈냐? " 

 

" 윤지야.. 잘 지냈어? " 

 

매주 수요일마다 윤지에게서 전화가 온다. 

 

처음 몇 주는 윤지와 더불어 성백이 그리고 수열이에게서 전화를 받느라 전화기 건너편이 왁자지껄 했는데 요즘은 다들 바쁜지 윤지하고만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오히려 성백이가 날 찾고, 수열이가 잘 참고 기다려준다는 것이 의외였지만 말이다.

 

" 그래서~ 최수열이 요즘 학생들 지도하느라 맨날 예민해져 있는데, 괜히 말 더 없으니까 무섭다? "

 

" 수열이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성인이라는 뜻이겠지. "

 

" 하여튼 그랬다고! 그래서 이번 주는 뭐하면서 지냈어? 한국은 돌아올 생각 없어? 야.. 맛있는 양꼬치 집 생겼는데 너랑 같이 가고싶다고오! 김성백도! 최수열도! 같이 안 가준다니까!? "

 

" 진정해 윤지야.. "

 

처음에 윤지에게서 수열이와 이권도의 소식을 듣는 것이 거북했지만,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들의 일처럼 느껴져서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이권도가 내게 티켓을 보내는 행동이라던가.. 

핸드폰으로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한국에서 오는 전화라던가.. 

 

그런 것들만 좀 줄어든다면 흔들리지 않을 텐데 말이다.

 

" 응? 체리? 왜 여깄어? "

 

한참 전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멀리서 키가 큰 장신의 성인 남성이 내게로 다가온다.

나를 체리라고 부르는 저 사람은 티나의 상점에서 일하는 또 다른 사람으로, 가끔 체리를 팔러 오는데.. 

 

내가 체리 상자를 안고 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날 체리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해도 남자한테 체리라는 칭호는 좀.. 키위라면 모를까.. 

 

"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시형이라니까. "

 

" 야! 너 옆에 누구야! "

 

" 아.. 그 어셔라고.. 저번에 통화했을 때 인사시켜줬, "

 

순간 쥐고 있던 전화기를 어셔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키가 커서 닿지도 않는 전화기를 빼앗으려고 발을 동동거리고 있자, 손으로 허리를 감싸 안은 그의 행동 때문에 당황스러워서 입에서 헉 소리가 나고 말았다.

 

" 야! 이 변태 같은 외국인 새끼야! 민시형한테 손 대면 가만 안 둬!! "

 

" 시형? 어어 잘 있어~ 너네 친구들은 원래 이렇게 사나워? "

 

" 어셔가 멋대로 통화를 바꿔서 그래요.. "

 

한국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아는 단어라곤 시형뿐이라 그런지 대충 대답을 하던 어셔가 내 볼에 입을 맞춘다.

만날 때마다 자꾸 인사라고 볼에 입을 맞추는 것에 이젠 반항을 할 힘도 없다..

 

" 돌려줘요! "

 

" 체리가 나에게 키스를 해준다면? "

 

" 이!! 변태 같은 새끼야!! 민시형한테 손대지 말라니까! "

 

" 형! "

 

순간,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심장이 두근 거린다. 

 

수열이, 수열이다.

 

 

" 수열아! 잘 지내? "

 

" 형 그 새끼한테서 떨어져, 당장 캐나다로 갈 테니까. "

 

" 아니, 너 선생님이고 학기도 안 끝났는데 여길 어떻게 와..! 진정하고 어셔도 이리 내놔요! "

 

" ah - 시형's  Boy friend? " 

 

어셔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나의 핸드폰을 손에 꽉 쥔 채 내가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수열이가 내 애인이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핸드폰을 넘겨줄까?

 

지금 상태의 내 키로는 당연히 어셔가 쥐고 있는 핸드폰을 뺏어낼 수 없다. 

 

하지만, 당장 어셔에게 뽀뽀를 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 으.. 맞아요! 내 애인이니까 내놔요! "

 

그래서, 그냥 충동적으로 수열이가 내 애인이 맞다고 말을 하고 말았다. 

 

수열이가 듣든 말든, 그냥 입 밖으로 나왔던 말에 어셔 또한 놀래고 핸드폰 너머로 듣고 있는 사람들 또한 놀랬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 oh- 그래서 나한테 지금까지 안 넘어온 거야? "

 

" 형.. "

 

" 미친.. 민시형 한국 뜨더니 오픈 마인드 다 됐네. "

 

우르르 쏟아지는 말들에 자리를 피하고 싶어도 핸드폰을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도망갈 수도 없었다.

 

" 말했으니까 돌려줘요, 어셔! "

 

" 근데, 체리가 애인이 있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 

 

" 네? "

 

한국의 정서랑 외국의 정서가 아무리 다르다고 해도, 임자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한테 들이대는 이 부도덕한 행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니까, 어셔는 약간 개방적인 사람인 건가?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개방적이잖아!

 

" 형, 내가 비행기 표 끊어서 보내줄 테니까 당장 한국으로 귀국해. "

 

얼어붙은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들린다. 

 

통화를 계속하고 있다간 통화가 먼저 끊어지는 게 아니라, 수열이의 이성이 먼저 끊어질 것 같으니 어서 종료라도..!

 

" 저런 성질 나쁜 사람보단 내가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체리? "

 

" 됐으니까 이리 내놔요. 계속 장난치면 나도 화낼 거예요. "

 

" 하여튼~ 체리는 늘 내 진심을 장난이라고 생각한다니까~ "

 

포기했다는 듯 쥐고 있던 핸드폰을 다시 내게 돌려주며 능청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가게를 빠져나가는 어셔가 오늘따라 더욱 밉상처럼 느껴진다.

 

평소에도 장난을 많이 치긴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곤란하게 했던 적은 없던 것 같은데.. 

 

 

" 형, 창가가 좋지? 아니면 아예 편하게 비즈니스 석으로 끊어줄까? "

 

"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내 비행기 표를 비즈니스로 끊어...! "

 

" 형한테 쓰려고 벌었던 돈들인데 괜찮아. "

 

내가 혹시, 어렸을 때 돈은 나랑 있을 때만 쓰라고 했던 걸까? 

 

나한테 쓰지 말고 좀.. 아끼던가, 너 하고 싶은 것 좀 사라 응..?

 

 

" 최수열.. 돈 막 쓰지 말고 좀 아껴. "

 

" 형한테 쓰는 건, 안 아까워.. "

 

" 알겠어.. 윤지 좀 다시 바꿔줄래? "

 

" 나랑 통화하는 건 재미없어? "

 

" 너랑 하는 게 재미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하여튼, 윤지한테 전할 말이 있어서 그래. "

 

" 나한테 말해주면 안 돼? 나한테 할 말은 없어? "

 

평소 같았으면 수열이가 떼를 쓰지 않고 윤지한테 바로 넘겨줬을 텐데 

오늘따라 마치 엄마에게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구는 게 좀.. 귀엽게 보인다.

 

" 사랑해 우리 수열이~ "

 

" 나도.. "

 

수열이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통화가 윤지에게로 넘어갔다.

 

" 그래서 언제 귀국한다고? "

 

"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우선 여기서 하던 일이 있어서, 휴가 받으면 갈 것 같아. "

 

" 그래 체리보이 ~ 올 때 체리 한 상자 담아와라. "

 

" 종종 보내줬잖아.. "

 

" 여기 입이 몇 갠데! 아무튼 건강하게 지내고 다음 주에 또 연락할게! "

 

" 어어.. 그래, 다들 건강하고 잘 들어가! "

 

 

통화가 끊기고 시끌벅적 했던 귓가도 다시 잠잠해졌다.

 

씁쓸한 마음에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을 바라보는데 분명 이른 아침에 편지를 주고 간 집배원이 다시 집 앞을 서성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어, 무슨 일 있으신가요? "

 

" 미처 전해드리지 못했던 편지가 있어서요. " 

 

" 주인아주머니께 제가 전달해드릴게요. "

 

" 아뇨, 티나 부인 말고 민시형씨께 온 우편입니다. "

 

우편배달부가 내게 내민 편지는 꽤 신경을 쓴듯한 느낌의 편지봉투였다.

지금까지 이권도에게서 온 편지들은 저렇게까지 고급스러운 느낌은 아니었는데..

 

이권도한테서 온 게 아닌 건가?

 

그럼 누구한테 온 거지? 

 

" 제가 민시형입니다만.. 저한테 온 게 맞나요? 분명, 아침에 받았는데.. "

 

" 저번 주에 갔어야 했던 우편이 누락 됐거든요..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받아서 다행이네요 수고하세요! "

 

편지를 받아내고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받는 사람의 이름만 적혀있지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적어있지 않았다.

 

지익 - 

 

편지 봉투를 뜯자마자 포장지 안에 있던 장미꽃이 바닥으로 휘날려 떨어진다.

 

깜짝 놀란 마음에 장미꽃들을 주섬주섬 줍고 있는데, 봉투 안에 편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종이를 꺼내자 주소가 적혀있었다.

 

[311-2351 WINDSOR PARK RD REGINA SK   S4V 1N4]

 

" 여기가 어디지... "

 

찬찬히 내용을 살펴보고 있는 와중에 편지 내용은 빵집에서 열린 오픈 이벤트인데, 문제는 이미 기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일주일만 더 빨리 왔었으면 다 같이 먹을 빵이라도 싸게 샀었을 텐데.. 아쉽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으려고 했지만, 편지 봉투 안에 다른 게 있었다는 사실에 봉투를 흔들었고 그 안에 있던 직사각형의 작은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 이게.. 뭐지? "

 

명함 크기의 종이를 주워서 살펴보는 순간 이 편지를 보낸 주인공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 다시 한번 행복하고 달콤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해 줄래요? ' ]

 

" 작가님..? "

 

이권도의 글씨체로 보이는 글과 카드에는 이권도가 사용했던 향수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장미향보다는 뭔가 더 가벼운 향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권도가 쓰는 향수 향이 이랬지..

 

" 시형? "

 

" 그, 혹시 티나.. 저 내일 휴가 좀 주실 수 있어요? "

 

" 오, 당연하지! 언제 쉬나 했더니.. 내일 한국으로 가는 거니? "

 

" 아뇨. 이 곳으로 가려는데.. 어떻게 갈 수 있을까요? "

 

" 음.. 아마 차를 타고 40분 정도 달려야 도착하는 공원인데, 혹시 볼 일이 있는 거니? "

 

" 저를 초대해준 친구가 있어서요. 그 친구를 보러 가요. "

 

" 우리 가게에서 나가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 있지? 거기에서 30분마다 오는 차가 있는데 그걸 타고 가면 된단다. "

 

" 고마워요 티나. "

 

" 물론이지~ "

 

티나에게 간단한 약도와 이권도에게 전해줄 체리를 바구니에 담고, 작은 꽃다발을 준비했다.

 

수열이뿐만 아니라 나에게 호감을 드러낸 사람이자.. 

 

많은 시간이 지나도 만나기 쉽지 않았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을 내일 보러 간다. 

 

"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잊은 건 아니다. 

 

아직까지도 가끔 추운 겨울날이 오면 몸을 움츠리며 다니고, 밤에는 악몽을 꾸는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집에 놀러 오는 어셔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두려움을 떨쳐낸 적도 있었고, 티나가 타 준 코코아를 마시면서 밤을 보냈던 적도 있었다.

 

이제야 그 두려움을 직면하지만, 그래도 내일 다녀오면 앞으로 두려워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생겼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 또한,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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